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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시드니 맛집 - 진정한 일본식, 쿠라


일식하면 시드니에서 대부분 초밥을 생각합니다. 사시미와 와사비 그리고 초밥. 한번에 손으로 집을 때 잡히는 밥알 수가 몇 개 정도야 하며 쥐는 힘의 크기와 초밥 만드는 사람의 손의 온도가 어때야 정말 고급 초밥이네 하며 이 정도 상식은 있어야 초밥 즐길 자격이 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시드니에는 꽤 있습니다. 그 지식이 만화책 초밥왕에서 온 게 아닐 것이라 설마 만화책 읽고 저리도 자신감 넘치게 얘기할 수는 없으리라 굳게 믿어 주고 나서라도 그게 도대체 머가 그리 중요한가 하는 나의 궁극적이며 매우 합리적인 질문은 언제나 답을 찾은 적이 없습니다. 온갖 아기자기한 장식과 이쁜 접시에 나오는 초밥. 하지만 계산할 때마다 내가 오늘 이 레스토랑을 사 버린 건가 하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며 무얼 먹었나 처음부터 다시 생각하게 하고 식당에 나와서도 한국 슈퍼에서 파는 김밥 한 줄에 오뎅 국물이 생각나게 하는 이 초밥은 결코 나의 리뷰에 소개 될 일이 없을 겁니다. 결코 내가 전에 후배한테 한 턱 낸다고 명동에 있는 회전 초밥 집에 들어가 접시 색깔 잘못 보고 참치 배꼽살 초밥 4접시 먹고 18만원 내고 생긴 트라우마 때문만은 아닙니다. 도대체 회 한 접시, 초고추장 그리고 밥과 초밥 40개의 재료는 똑같으나 가격은 두 배인 부조화에서 나오는 가장 원초적인 질문입니다. 이걸 왜 먹는 건가?


그럼에도 나는 일식을 정말 좋아합니다. 한식 다음 일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난 일식이 가장 좋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그냥 입맛이 맞아서. 사실 정말 가까운 나라, 거의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민족의 시작이 우리와 동일한 일본인이 먹는 것이니 우리의 입맛에도 맞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네들이 먹는 우동, 라면 국물이 우리 입 맛에 맞고 그네들 덮밥이 우리 입 맛에 맞는 것은 오래 전에 헤어져 떨어져 지내다가 다시 만난 친동생 마냥 모습은 이제 사뭇 변했지만 아 우리가 전에는 한 핏줄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참고로 일본 음식 하면 스키야키나 규동 또는 와규처럼 소고기가 들어간 요리를 생각하겠지만 사실 일본은 7세기부터 메이지 유신까지 육류를 금지했던 나라였습니다. 육식은 몸과 마음을 더럽힌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니 참으로 어이가 없기는 합니다. 전국 시대 때 수 많은 사람이 굶주려 죽어가면서도 옆에 죽어가는 소를 먹지 않았다니 정말 믿기지는 않지만 같이 일하는 인도사람에게 너 굶어 죽게 되었는데 옆에 소가 있으면 먹지 않을 거냐고 물어 봤을 때 나를 보던 그 사람의 눈빛을 본 후에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같은 실수 절대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렇게 길게 일식이 어떻니 장황하게 말하고 소개할 음식은 여러분이 당황스럽게도 카레입니다. 일본 사람들 특유의 남의 것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하는 섬나라 특성은 여러 곳에서 발견 됩니다. 프랑스 요리 크로켓이 고로케로, 커틀렛이 돈까스로 바뀐 것이나  햄버거 패티의 일본식 변형 함박스테이크 등 그들의 남의 것 가져다 자기 것인 척 하는 특성은  그들이 섬나라에 살기에 자연히 얻어진 것이겠지만 특히 이 인도의 커리의 변형인 카레의 발전은 정말 놀랍습니다. 인도의 커리의 거칠고 강인한 남성적인 특성이 일본인의 손을 거치며 부드럽고 깔끔한 맛으로 바뀐 모습은 흡사 나에게 원래 커리가 태생은 여자였으나 남자로 태어나 성 정체성을 겪다가 일본에서 성전환 수술을 거쳐 이제 겨우 그 본 모습을 찾은 거 같은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일본에서 먹었던 일본 커리의 그 맛을 여기 시드니에서도 맛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인이 운영하는 정말 평범한 일식을 팔지만 정말 일본식으로 요리하는 이 세 평 남짓한 이 조그만 가게의 이름은 Kura. 패디스 마켓 메인 입구 바로 맞은 편 토마스 스트리트 코너에 있는 이 식당은 이 조그만 식당으로 시작해 현재 제가 알기로 시티에만 2개의 분점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맛은 보장되었다 하겠습니다. 


 

여기의 최고의 메뉴는 당연히 카레. 여러 가지 카레가 있지만 소혀카레와 새우카레를 추천 드립니다. 제가 이번에 먹었던 것은 새우카레, 가격은 11.50불입니다. 부드럽고 달콤하면서도 매꼼하고 자극적인 뒷맛. 카레를 누가 먹기 시작했는지 모르지만 분명 처음부터 밥이랑 같이 먹었다고 제가 근거 없이 주장하게 할 정도로 우리가 먹는 밥과는 천생연분이라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가 해 주시는 카레를 처음 맛본 후 어머니가 카레를 해 줄 때마다 동생이 내 꺼를 뺏어 먹는다는 생각에 저에게 동생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싫을 정도로 카레 매니아였고 라면과 함께 제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요리인 그만큼 쉬운 요리인 카레는 초등학생이였던 저에게 너무 먹으면 몸을 움직일 수 없다는 사실과 배부른 돼지가 배고픈 소크라테스보다 낫다는 철학적 명제를 깨닫게 해 준 음식입니다. 이 Kura의 카레는 어머니가 해 주셨던 오뚜기 카레 보다 정확히 20배 더 맛있습니다. 시티에서 혼자 밥 먹어야 할 때 마다 자주 찾는 저만의 핫 스팟입니다.


 

이 식당은 또한 시드니 시내 최고의 미소스프를 제공합니다. 모든 음식에 공짜로 제공되는 이 미소스프는 다른 일식당에 가서 제공되는 정성이 부족한, 공짜로 제공되기에 막 만든 미소스프를 먹을 때 마다 왜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맛없는 국물을 먹는지 항시 궁금해 했었는데 제대로 정성들여 재료 아끼지 않고 만들면 이 미소스프도 맛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식당입니다. 참고로 여러분에게 팁을 드리자면 더 달라면 더 줍니다. 제가 4번까지 해 보았습니다. 일본인 특유의 앞에서는 인상을 찡그리지 않는 민족성 때문인지 속으로 오만 욕을 했을지라도 제 앞에서는 끝까지 웃으면서 가져다 주었습니다. 은근히 몸이 차가워지는 시드니 겨울에 따듯한 국물이 생각나면 가서 저처럼 하시면 됩니다. 


모든 요리에 3불을 추가 하면 사이드 메뉴를 시킬 수 있는데 이 사이드 메뉴 중 우동을 추천 드립니다. 단지 3불 추가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성들여 나오며 국물이 끝내 줍니다. 일본식 우동 국물의 특징인 약간 단 맛이 매운 맛과 걸죽한 국물 맛에 길들여진 저의 입맛에 매번 약간의 위화감을 주지만 제대로 가다랑이 부시와 미역을 아끼지 않고 낸 국물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로 그 육수에서 오는 진한 해산물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사이드 메뉴이기에 작은 그릇에 담겨 옵니다만 한끼 식사로가 아니라 식사 후 디저트로 정말 손색이 없을 정도로 카레 + 사이드 메뉴 우동은 스타의 마린과 시즈탱크 조합처럼 강력합니다.


외국인 리뷰는 이번 주에 스킵합니다. 서양인들이 밥 맛을 논한다는 게 저에게는 철 없는 여자의 인생 넋두리를 듣는 것 처럼 분명 그에게는 중요한 얘기이고 진실된 얘기겠지만 나에게는 들은 후에 기억도 안나고 남는 게 없는 얘기이기에 찾아는 보았으나 역시나 건질 것이 없었습니다. 


이 식당은 친구와 같이 금요일 저녁에 가서 근사하게 저녁 먹는 식당은 아닙니다. 이 식당 정말 작습니다. 딱 화장실 크기입니다. 자리는 10개 정도로 그 중 그나마 같이 간 사람이랑 얼굴이라도 마주 보면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은 달랑 2개 나머지는 카운터 자리입니다. 밥은 먹어야 겠는데 별로 얼굴 보면서 먹고 싶지 않은 사람이랑 가기에는 최고입니다. 그 맛으로 인해 같이 간 사람도 먹는데 집중할 것이고 또 이 식당 자리가 작기 때문에 먹자 마자 그릇 치워 버리고 나가길 기다립니다. 소개팅 했는데 정말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을 때 같이 가시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으실 겁니다.


참고로 저의 리뷰는 본점에만 한정 됩니다. 다른 분점은 가 보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가게도 크고 자리도 많지만 주방장을 카피할 수는 없기에 가 볼려고 시도도 해 보지 않았습니다. 같은 재료, 같은 조리법이라도 사람이 달라지면 그 맛도 달라진다는 저의 고집에 쿠라는 본점만 갔습니다. 


이 식당은 분명 도쿄 뒷골목에 있는 우리네 분식집 같은 가게입니다. 하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정말 그대로 도쿄에 있던 작은 가게를 시드니에 옮겨온 거라고. 맛과 분위기 그리고 그 안의 사람들까지도.